교환학생 프로그램 후 ‘다른 나’로 태어나다

  • 작성일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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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모드 도쿄 교환학생을 다녀와서

‘불평은 이제 그만하자. 해봤자 아무 소용도 없다. 이젠 내가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일본으로 교환학생을 떠나면서 노트에 적었던 글귀다. 그리고 뭔가 바꾸어보겠다는 결심으로 2주간의 일본 교환학생 생활을 했다.

2010년 11월 6일 아침 8시, 비행기를 타고 약 두 시간 여만에 도착한 도쿄. 모든 것은 순조로웠다. 따스한 일본의 날씨가 기분 좋았고, 미리 잡아둔 숙소도 생각보다는 에스모드 도쿄와 가까운 위치에 있었다. 방에 짐을 푼 후 시부야로 달려나가 돈코츠라멘을 먹고, 요요기코엔을 돌아다녔다. 그리고 7일에는 다음 날 첫 등교를 하는 에스모드의 위치를 확인하기 위해 시험 삼아 한번 가보았다. 에스모드 서울과는 다르게 높지 않고 넓은 건물. 현대식인 한국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였다. 일요일이라 문은 열려있지 않았지만, 그렇게 처음으로 학교를 방문해 보았다.

첫 주는 미리 한국에서 받아 보았던 스케줄처럼 그리 바쁘지 않았다. 스틸리즘같은 경우에는 클래스에서 진행 중이던 도시에가 있어서 견학하는 수준이었다. 물론 개인과제가 있었는데 사실 학교수업보다 이것 때문에 더 힘들었다. 개인과제는 일본의 유명한 셀렉트샵이라든지 브랜드빌딩을 방문하는 것. 난 담임이신 하마구치 선생님께서 추천해주시는 시부야, 하라주쿠, 오모테산도, 긴자 등의 매장을 방문해야 했기 때문에 다리가 무너지는 고통을 느낄 때까지 움직여야만 했다. 하지만 그 고통덕분에 너무 많은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사실 많이 분했다. 아무리 요즘 한국 패션산업이 많이 발달했다고 해도 일본의 셀렉트샵은 한국과 비교할 수준이 아니었다. 특히 난 긴자의 유명한 브랜드보다도 시부야의 CANDY,, 오모테산도의 VALTEAT81이 너무나도 마음에 들었다. 신선하고 재미있는 제품이 정말 많았다. 보고나서 감동에 차 눈물이 나올 지경이었다.

둘째 주, 생각지도 못한 악몽이 시작되었다. 수업내용을 이해할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실 일본어를 조금 안다고 추천을 받아 교환학생까지 오게 되었지만, 내 어학실력이 수업을 진행할 정도의 레벨이 아니었는가 보다. 특히나 패션에 관련된 전문적인 용어는 살인적이었다. 스틸리즘 같은 경우는 말로써 무언가를 표현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눈치껏 아는 단어를 들어가며 수업을 받을 수 있었지만, 모델리즘은 정말 ‘살인적’이라는 단어가 가장 적당할 것이다.
거기에다가 모델리즘 시바사키 교수님은 이해할때까지 꼼꼼히 설명해주시는 분이셔서 대충대충이란 것을 절대 엄두를 낼 수 없었다. 물론 지금은 그런 장인정신이 너무나 대단하다고 생각한다. 설명은 너무나 어렵고, 특히 입체패턴 같은 경우에는 한국과 수업내용이 너무 달랐다. 핀 꼽는 방법까지도 말이다. 한국의 경우 입체수업도 하지만 평면수업을 주로 하고 입체는 기본위주로 한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는 한 모델을 가지고 평면수업을 하고, 그 후 입체수업을 한다. 그래야 한 모델수업이 끝나는 것이다.
너무 힘들었다. 그때는 진심으로 그냥 한국으로 돌아갈까 생각도 했었다. 겨우 그런 걸 가지고 나약한 생각을 하느냐고 비난 할 수도 있겠지만 그것은 누구도 그 때의 나의 상황이 되지 않고는 이해를 못할 것이다. 너무 속상했다. 나름 한국에서 잘한다고 일본에 왔는데 구제불능 취급을 당하고 있다니. 난 일본의 패션을 느끼려고 왔는데 수업조차 못 따라가고 있다니.

이런 나에게 위안과 힘을 주었던 것은 사실 같은 반 친구들이었다. 둘째 주의 어느 날이었던가. 그날도 진도가 늦어서 속상해하며 가방을 챙기는데, 마호랑 아야(가장 친했던 친구)가 오늘 아야 생일이라고 생일파티에 가자고 했다. 클래스 친구들이랑 친하긴 했지만 그렇게 사적인 약속은 처음이라서 너무 고마웠다. 내가 쑥스럽게 내가 끼어도 되냐고 하자 당연하다며 가자고 했다. 그렇게 반 친구 몇 명이서 모여 근처 에비스 까페에 가서 케잌과 차를 마시며 아야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그러면서 패션이야기와 서로의 나라에 대한 이야기를 하면서 말이다. 모두들 그전까지 말은 하지 않았지만 내가 잘해나가고 있는지 사실 걱정이 되었다며 모르는 것이 있으면 물어보라고 했다. 내 나라가 아닌, 언어가 다른 나라에서 그런 관심은 정말, 너무나 기쁘고 고맙기만 했다.

그 때부터 조금씩 수업을 듣는 내 태도도 바뀌기 시작한 것이 아닌가 싶다. 자리도 선생님과 친구들의 배려로 가장 앞에 앉게 되고, 옆에는 아야가 앉아서(아애는 공부도 잘했다) 모르는 것을 가르쳐주었다. 항상 자신도 이스라엘에서 유학할 때 언어가 안 통하는 그런 마음을 안다며 이해가 안 되면 자신에게 물어보라고 했다. 그런 관심이 너무 고마웠다. 그리고 난 패션탐방과 패션공부 중 탐방 보다는 공부에 더 집중하기로 했다. 이는 날 도와주는 친구들과 선생님들에 대한 당연한 내 의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어쩌면 누군가는 내게 ‘패션 공부는 한국에서 해도 되니까 일본에서는 무조건 패션 경향을 보고 와야지’하고 다그칠지 모른다. 하지만 난 공부를 선택했고 그것에는 지금도 후회가 없다. 솔직하게 난 말하는데, 내 나름대로 열심히 했다. 쉬는 날에도 학교에 나와서 수업진도를 따라가기 위해 공부했다. 처음 1~2주는 학교 끝나고 여러 브랜드샵을 보러 다녔지만 그 후부터는 공부를 했다. 어떤 날은 맥도날드에 가서 새벽 3시까지 디자인을 하고 돌아올 때도 많았다.(일본 맥도날드는 일본에서는 거의 까페수준이다.) 그러면서 내 페이스를 조절하는 법도 자연스럽게 알게 되었다. 늦게 한다고 해서 못 하는게 아니고, 빨리 한다고 해서 잘 하는게 아니라는 것을 배웠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고, 조금씩 모델리즘 진도도 친구들을 따라잡기 시작했다. 다들 나에게 이해력이 빠르다며 칭찬해 주었다. 하지만 사실은 이해력이나 손이 빠르기보다 쉬는 날에 나와서 한 덕분이었다. 그 덕에 난 마지막 모델을 반에서 세 번째로 빨리 제출할 수 있었고, 시바사키 교수님께 칭찬을 받을 수 있었다. 그때 교수님의 말씀은 지금 생각해도 눈물이 나올 것 같다. 모양이 이뻐졌다고 칭찬을 하셔서, ”다 선생님께서 포기하지 않고 잘 가르쳐주신 덕분이예요” 라고 말씀드리니, "아니야, 네가 쉬는 날에도 나와서 혼자 남아서 한 덕이야."라고 진지하게 말씀해 주셨다. ‘알고 계셨구나. 제대로 날 봐주고 계셨구나.’ 그런 생각에 코끝이 찡해졌었다. 그때의 기분, 절대 잊어버리지 않을 것이다.

스틸리즘 수업은 특히 너무 좋았다. 자유로웠다. 이렇게 저렇게 틀이 맞춰진 것이 아니라서 더욱 좋았다. ‘좋았다’는 말밖에 떠오르는 게 없을 정도이다. 사실 난 스틸보다도 모델이 꽤 문제가 있었기에 모델리즘에 더욱 신경을 쏟았었다. 스틸은 '한번 내 마음대로 해보자'라는 생각을 가지고 진행하였다. 한국에서는 사실 신경쓸 것이 많았다. 트렌드라든지, 디자이너라든지 말이다. 처음에 일본 수업이 어떻게 진행되는지 시험해 보기 위해서 내가 원하는 이미지라든지 컬렉션을 찾아갔다. 그리고는 기분 좋은 혼남을 당했다. 컬렉션사진은 곱게 덮어버리시는 교수님. 그리고 난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내가 원하는 자유를 한번 시험해보기에 너무 좋은 기회가 찾아왔구나! 난 내 마음대로 상상을 했다. 보통 주제나 이미지맵 등은 보는 이가 확실히 알도록 보여주는 것이 이제까지 내가 한국에서 작업해온 스타일이었으며 점수를 잘 받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명확성 말이다. 하지만 이번에는 내가 정말 하고 싶은 이야기를 했다. 난 사실 그런 객관적이고 명확한 것보다 주관적인 것을 좋아하며 어떤 현상이나 모양으로 디자인하는 것보다는 그런 감성 자체를 디자인하고 싶었다. 이런 디자인의 감성이 상대방에게 전달되는지에 대해서는 항상 나에게는 미지수였다. 그렇기에 이번에는 나 혼자만의 도전을 해보았다. 결과는 나에겐 대성공이었다.

내가 스틸리즘 시간 중 가장 마음에 들었던 것은 친구들 앞에서 나의 도시에와 세계관을 설명하는, 마지막 프레젠테이션 시간이었다. 모두들 발표 전에 종이를 받는데 그 종이에는 발표순서대로 모두의 이름이 적혀있다. 발표한 사람에게 좋았던 점이나 느낀 점을 코멘트로 적어 주는 것이다. 이 코멘트 종이는 익명으로 하며 발표가 끝난 후에 걷었다가 후에 잘라서 그 사람에게 나누어 준다. 나 또한 그 코멘트를 받았다. 그 코멘트에는 친구들이 소중하게 적어준 마음이 보였다. 그래서 더욱 소중하고 고맙게 여겨졌다.
많은 친구들이 내가 표현하고 말하고자 하는 바를 느꼈다며 칭찬해주었다. 교수님께서도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며, 디자인도 멋지다고 칭찬해주셨다. 스웨덴에서 온, 일본어를 너무나 잘하고 우아하며 아름다운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 산나는 한국에 돌아가서도 꼭 만들어보라고 했다. 물론 좋지 않은 부분도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이 너무나 친절했기에 나에게 그런 좋은 이야기만 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들이 나에게 보여준 관심은 너무 분에 넘치는 것이었다. 내가 이번 일본에서 얻은 가장 소중한 것은 아마 나와 다르지만 독특한 세계관을 가지고 같은 꿈을 가지고 노력하는 친구들을 얻었다는 것이라 생각한다. 그들은 그저 옷을 만든다는 것을 넘어 자신이 표현하고자 하는 가치를 옷을 통하여 표현하고자 노력했다. 나 또한 그런 생각을 가지고 있기에 서로의 세계관을 이야기하며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 너무나 특별하고 소중하고 고마웠다.

모든 일정을 마치고 친구들이 단합회 겸 송별회 파티를 해주었다. 너무 고마웠다. 송별회 다음날은 아야네 집에서 친구들과 타코야키 파티를했다. 너무 즐거웠다. 밤새도록 이야기를 하며 놀았다. 친구들은 이별선물도 주었다. 일본전통 특산 술이었는데, 날 생각해주는 그들의 따스한 친절이 너무 고마웠다. 다들 일본인들은 각자 계산하고 조금은 개인주의적이라고들 하는데, 내가 느낀 친구들을 그렇지 않았다. 나에게 교환학생 와서 돈도 많이 썼을텐데 어쩌냐며 걱정도 해주고, 남북한 문제에 대해서도 괜찮냐며 걱정도 해주었다. 그 후 쯔키지시장에 가서 비싼 스시도 사주고, 너무 좋은 대접을 해주었다. 너무 친절하고 정감 있고 고마운 친구들에게 다음에 꼭 한국에 놀러 오라고 했다. 오면 정말 나도 좋은 대접을 해주고, 우리나라 이미지를 높이고 싶다.

이번 교환학생연수는 나에게 많은 것을 가르쳐주었다. 입체패턴에 대한 이해라든지, 자유로운 패션에 대한 이해라든지 하는 패션 디자인적 측면도 많지만, 무엇보다도, 사람에 대한 철학을 갖게 되었다. 이 세상에는 언어도 문화도 다르지만 우리 에스모드 서울 학생들처럼 패션을 사랑하고 열정을 가지며 노력하는 친구들이 많다는 것. 그렇기에 패션의 미래는 밝을 것이라는 것을 깨달을 수 있었다. 무사히 에스모드 도쿄 교환연수를 끝낼 수 있도록 도와주신 시바사키 교수님과 하마구치 교수님, 그리고 에스모드 도쿄 1학년 F반 친구들에게 너무 고맙다. 또 이런 기회를 갖게 해 주신 에스모드 서울에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