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환학생 리포트] 에스모드 베를린과의 인연
- 작성일2012.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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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11월 10일 에스모드 베를린으로 첫 등교를 했다. 전날 학교에 전화해 오전 10시까지 갈 수 있다는 확인을 하고 다음날 들뜬 마음으로 학교주변 맵을 동원해 학교로 찾아갔다. 큰 공원을 끼고 돌아 ESMOD간판이 반갑게 나를 맞았다. 학교 건물에 들어서자 자그마한 정원이 나왔고 정원에 놓여 뒹구는, 학생들이 만든 큰 인형들이 에스모드 베를린의 개성을 보여주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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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레는 마음으로 학교에 들어가 교직원분들과 인사한 뒤 곧이어 1학년 담당 스틸리즘 교수님의 안내를 받아 교실로 올라갔다. 스틸리즘 교수님은 나를 모델리즘 교수님께 소개했고 나는 곧장 수업에 투입되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멍하게 있는데 베를린 친구들이 조금씩 나에게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고 각자 작업이 바빠 보였는데도 나에게 와서 말을 걸고 어디서 왔는지 등 이것저것 물어봐주어 자연스럽게 이야기를 나눴다. 선생님께서는 제도지를 주셨고 나를 위해 영어로 디테일한 것들을 설명해주셨다. 처음엔 사실 학교에서 쓰던 전문 용어들을 영어로 익히지 못해 영어로 설명을 듣는 것이 좀 힘들었다. 그럴 때에는 반 친구들이 자신에게 물어보라며 격려해주었다. 모두들 나를 위해서 도와주려고 하고 함께 해주는 느낌이여서 학교적응이 어렵지 않았다.
그 다음 주는 스틸리즘 수업만 진행되었다. ‘sainte catherine’이라는 전학년이 모두 참여할 큰 쇼를 앞두고 영감을 받기 위해 다함께 갤러리를 구경하러 갔다. 친구들에게 물어보니 항상 과제가 있으면 다 함께 작품전에 와서 영감을 받는다고 했다. 다음날은 선생님께서 sainte catherine의 주제를 알려주셨다. 주제는 가난한 이민자와 하이테크놀로지였다. 주제에 맞춰서 가장 먼저 자신의 무드보드를 구성해야했다. 어떤 디테일을 쓸지 어떤 볼륨을 할지 자신의 콘셉트를 한눈에 보여주는 여러 장의 보드를 만드는 일. 한국 학생들은 주로 컴퓨터로 깨끗하게 작업을 하는데 베를린 친구들은 잡지나 신문지를 잘라서 붙이거나 마카로 무드북을 구성했다. 종이도 박스를 잘라 만들기도 하고 하드 보드지를 잘라서 사용했다. 그러니 더욱 입체감있고 생생한 무드북들이 완성되었고 친구들의 무드북을 구경하는 재미가 컸다.
무드북을 진행하는 동안에 가장 중요했던 것은 꼴라주로 자신이 만들 착장의 볼륨을 잡는 것이었다. 한 번도 해보지 못한 나는 혼자 헤매기 시작했다. 하지만 친구들이 한 것을 보자 조금씩 감이 오기 시작했고 세 개의 볼륨을 완성했다. 각자의 무드북과 꼴라쥬한 볼륨을 펼쳐놓고 친구들과 선생님과 의논했고 선생님께서 나의 무드북을 보고 주제가 명확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무대에선 긴 길이의 아웃핏이 더 멋지게 보인다며 길이를 발목까지 늘여보자고 권해주셨다.
주제가 가난한 이민자라서 사용할 수 있는 재료가격이 50유로로 제한되었고 친구들은 깡통이나 전선, 비닐봉지 등의 재료를 사용했다. 전선을 뜨개질해 옷을 만들고 사탕껍질을 엮어 원피스를 만드는 등 친구들을 보며 저걸 시간 안에 완성이나 할 수 있을까 그냥 원단으로 하는 게 낫지 않나 생각했지만 어느 순간 볼륨을 찾아내고 날이 다르게 계획한 모습을 갖춰가는 과정을 보고 나는 그동안 한 번도 배우지 못한 것을 친구들에게서 배워갔다. 그것은 자신의 작업에 대한 자신감, 도전 그리고 개성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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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하이테크놀로지와 아프리카를 결합한 아웃핏을 만들었다. 한국에서와 마찬가지로 시행착오를 겪으며 완성해 나갔다. 그 다음엔 아웃핏에 맞는 액세사리도 제작해야 했다. 아프리카의 느낌을 내기 위해 지푸라기 같은 종이를 자르고 꼬아 모자를 만들었다. 하지만 마음에 들지 않았고 고민하던 중 항상 장난기 많으신 스틸리즘 선생님께서 오시더니 예를 보여주시며 좀 더 강렬하게 해보자고 제안하셨다. 교환학생임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더 나은 방향의 완성 착장이 나오도록 이끌어 주는 선생님들에게 너무 감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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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것이 완성되었고 완착을 입은 포토샷을 찍어오는 것이 주말동안의 과제였다. 친구들과 내가 지내는 방을 배경으로 찍기로 했고 오후에 친구들과 우리 집에 모여 사진을 찍었다. 진짜 사진작가와 모델이 된 양 이런 저런 포즈로 여러 장의 사진을 찍으며 반 친구들과 또 하나의 색다른 경험을 했다. 그 다음 주는 A4용지를 쓰는 한국과는 다르게 전지에다 일러스트를 그렸고 스틸리즘 선생님이 오셔서 “이로써 넌 모든 스틸리즘 수업을 다 해냈다. 이제 쇼만 남았다“고 해주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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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쇼 날, 세 아웃핏의 모델이었던 나는 드레서의 도움을 받아 남이 보든 말든 옷을 순식간에 갈아입어야 했고 무대에서 워킹하는 내내 내가 다른 나라에서 패션쇼를 해보고 있다는 생각에 들뜨고 즐거웠다. 쇼의 마지막 순서는 3학년의 아웃핏들이었는데 학교 측의 배려로 쇼의 피날레모델을 하게 되어서 쇼가 끝날 때의 감동을 더없이 잘 느낄 수 있었다. 실수 없이 쇼도 끝났고 쇼를 시작 전 샴페인 파티도 기억에 남는다. 이래저래 좋은 추억만 간직한 채 나는 그렇게 에스모드 베를린에서의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쇼를 끝내고 이틀 뒤 한국 귀국을 앞둔 나는 친구들과 선생님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다. 한국으로 교환학생을 꼭 오겠다는 친구도 있었고 이제 못 보냐며 우는 친구도 있었다. 스틸리즘 선생님은 처음엔 네가 소극적인 것 같아 걱정이었는데 시간이 갈수록 다시 보게 되었고 결국엔 잘 해냈다며 연락을 계속 하자고 안아주셨다. 모델리즘 선생님께서는 아웃핏이 정말 멋졌다고 칭찬해주셨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라는 걱정과 독일어로 진행되는 수업과 독일친구들 사이에서 처음엔 낯설었지만 시간이 갈수록 베를린의 자유로운 매력에 빠졌고 개방적인 수업방식과 개성 있고 친절한 친구들의 도움에 즐거운 추억만 한가득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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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언젠가 독일에서 살아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든다. 받고 배운 것이 많은 만큼 큰 아쉬움과 함께 즐거웠던 2달간의 에스모드 베를린 생활을 마음에 가득 담고 왔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