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게 더 큰 욕심을 심어준 파리 연수
- 작성일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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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추적 내리는 비, 회색 빛 건물들. ‘낭만과 예술의 도시’ 파리는 나에게 어딘지 모르게 쓸쓸하게 다가왔다. 그리고 그 속에 자리 잡고 있는 에스모드의 본교. 낯선 파리에서 익숙한 에스모드의 로고를 발견하던 순간, 내가 이 학교의 학생이라는 것이 자랑스러워져 가슴이 따뜻해졌었다. 한 달 하고도 몇 주. 관광객이 아닌 교환학생으로서 날 믿고 보내주신 부모님과 교수님께 감사하며 나의 에스모드 파리 생활은 시작되었다.
영어밖에 구사하지 못하는 나이기에 1학년 과정만 개설되어 있는 영어클래스로 배정받았으나 대부분의 수업이 불어로 진행되었다. 교수님들께서 간간히 영어로 설명해주시기는 하지만 답답하기는 마찬가지다. 다행히 같은 반 친구들이 내가 헷갈려 할 때마다 통역해 주어서 어려움은 없었다. 영어를 구사하기는 하지만 파리에서는 그것 하나만으로는 생활하기 어렵다. 답답한 것도 많았고 짜증나는 일도 많았기에 한국에 돌아 온 지금도 다시 돌아갈 날을 꿈꾸며 불어를 열심히 공부하고 있다.
에스모드 파리에는 프랑스 학생들 보다 전 세계 각지에서 온 학생들이 많다. 나는 프랑스 한 나라를 방문하고 왔지만 그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 덕분에 많은 나라를 다녀온 느낌이다. 우리 반에도 프랑스, 러시아, 독일, 이탈리아, 스페인, 미국, 터키, 모로코, 영국, 중국, 대만, 홍콩에서 온 아이들이 섞여 있었는데 그들이 하는 디자인이 어찌나 다양하고 개성 넘치는지 수 년간의 입시미술로 닫혀있던 내게 그들의 디자인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주로 단색으로 강하게 그림을 그리는 동양아이들과는 달리 유럽아이들은 다양하고 화려한 색깔을 사용한다. 제출한 스틸리즘 도시에를 보아도 알 수 있었는데, 얼마나 다양하던지 똑같거나 비슷한 느낌은 한 군데도 찾지 못했다. 내가 얼마나 좁게 생각하고 있었는지 많이 느꼈고, 그들이 쓴 색깔만큼 다양한 개성을 가진 유럽 학생들에게서 많은 것을 배웠다.
처음 학교일정이 시작 되었을 때는 모돌로지, 즉 평가주간 기간이었기에 교외행사가 많아 파리를 더 다양하게 경험할 수 있었다. 처음 보는 디자이너의 부티크, 국내에서는 볼 수 없었던 브랜드, 잘 정리된 수준 높은 빈티지 가게와 아울렛, 그 존재자체가 예술작품인 건물들이 가득했고, 특히 좋았던 점은 한국처럼 눈치를 주는 점원이 없다는 점이었다. 한국에서 시장조사를 할 때면 쫓겨나지는 않을까 조심조심하며 과제를 했었는데 파리에서는 마음 편하게 옷을 뒤집어보기도 하고 입어볼 수 있었다. 거리를 걷다 보면 패션에 파묻혀 있다는 것을 느끼게 되는 파리에서, 이런 환경에서 공부하고 있는 에스모드 파리 학생들이 부러운 순간이었다. 예술을 위해 또 예술가들을 위해 모든 것을 배려해주고 허락해주는 곳이 파리다. 예술가들이 아무런 걱정 없이 꿈꿀 수 있도록 안아주고 그들이 살아가는 환경을 보존하고 가꿔준다. 그 품 안에서 파리의 예술가들은 항상 새로운 아이디어를 얻어내고 그려가며 무엇보다 자유롭다. 지하철역의 더러움도 지린내도 그다지 싫지 않게 느껴지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모델리즘 수업은 진행이 매우 더뎠다. 중간에 교수님이 바뀌기도 했고, 수업시간이 없어지기도 했다. 교수님은 캐나다에서 오신 Patti교수님이셨는데 꼼꼼하게 가르쳐 주시기는 했지만 이미 배우고 간 내용을 배우는지라, 나에게는 심심하기만 했다. 배우고 싶었던 입체패턴수업은 없었고 상의원형으로 첫 수업이 시작해서 다트이동 하는 것까지만 3주 동안 진행이 되었는데 다른 아이들보다 내가 빠른 건 어쩔 수 없었다. 작업과정 진행 스케줄부터 자 쓰는 법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한국의 교수님이 그리웠고, 빠르게 진행되는 수업 스케줄과 과제에 힘들기도 했었지만 나도 모르게, 내가 배운 방법 그대로 오히려 다른 애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었기에 교수님께 정말 감사했다. 학기가 9월에 시작하는 파리는 진도가 굉장히 느리다. 빠르고 타이트하게 진행되는 서울의 수업방식에 익숙해진 걸까. 수업시간에 남아있는 시간을 보내는 것이 불편하고 힘들었다. 아직 1학년이기에 할 수 있는 것이 얼마 없어 2학년 때 다시 오면 정말 좋겠다라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렇게 된다면 더 많은 것을 내 것으로 만들어 갈 수 있을텐데.
처음에는 서먹했던 반 아이들과도 많이 친해졌다. 난 모델리즘을 배우는 반과 스틸리즘을 배우는 반이 달라서 더 많은 아이들을 만나게 되었는데 이들은 웃으며 인사만 건네면 더 환하게 웃으며 맞아준다. 내 이름을 정확하게 발음하지 못해서 ‘꼬헤앙(한국인)’하고 부르는 아이들도 있었지만 그들과 함께한 시간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다. 파리에 온 첫 눈에 길 한 가운데서 소리를 지르며 눈으로 같이 난리를 치던 친구들이 그립다. 수업시간 도중에 벌떡 일어나서 춤을 추기도 하고, 내 머리를 손으로 빗으며 장난치기도 하고, 처음 하는 프랑스식 인사에 당황하는 날 보며 놀리기도 하고, 지금도 파리에 언제 돌아오냐며, 보고 싶다고 메일을 보낸다. 에스모드란 이름 아래, 패션을 사랑한다는 공통점으로 만난 소중한 인연들이 나에게는 수 십 명이나 생겼다.
프랑스를 너무나도 사랑하시는 Niai교수님과 함께했던 스틸리즘 수업은 일 분 일 초가 보석 같은 시간들이었다. 아직 이들은 스커트를 진행하고 있었는데, 스커트로만 도시에 두 개를 제출한다. 내가 갔었을 때는 두 번째 스커트 도시에를 진행하고 있었고, 아이들은 모두 자신의 테마에 맞는 이미지를 찾느라 정신이 없었다. 과제는 자신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정해 그 브랜드의 히스토리를 조사하고 자신이 원하는 테마로 선택한 브랜드이미지에 매치되도록 스커트디자인을 전개하는 것이었다. 난 주로 노트북을 가지고 다니면서 디자인 이미지맵까지의 과정을 포토샵을 사용해 진행했는데, 이들은 전혀 포토샵 사용을 하지 않고 수작업으로 진행했다. 사진을 오려 붙이고 편집하는 것보다 자신이 직접 드로잉하고 페인팅하는 아이들이 많아서 흥미로웠다.
교수님께서는 절대 학생들의 작업에 손을 대지 않으시고 토의하듯이 자신의 의견을 말씀하셨고 작업을 진행하는 학생의 의견을 항상 물어보셨다. 이 옷을 만들 수 있는지 없는지 생각하기 전에 상상하듯 자유롭게 마음껏 일단 그려내게 하셨다. ‘이 옷은 안 된다’는 말을 나는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다. 그래서 더 많이 그릴 수 있었고, 나도 그들처럼 자유로울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디테일, 실루엣을 정하고 디자인을 전개했기 때문에 같은 실루엣에 ‘이 디테일을 어디에 갖다 붙일까’ 라는 생각밖에 하지 않게 되어 답답했었는데 그러한 제약이 없으니 더 마음껏 그려낼 수 있었던 것 같다.
또 하나 좋았던 점은 다른 친구들의 작품과 그에 대한 평을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진행하고 있는 작업들을 한 곳에 펼쳐놓고 교수님뿐만 아니라 학생들도 같이 이야기한다. 그 과정에서 아, 이것도 괜찮네 하면서 얻은 아이디어가 많았다. 서로 완성해서 제출하기 바쁜 한국에서도 이러한 단계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YSL로 디자인을 전개한 내 도시에를 보고 ‘잘 팔리겠다.’라는 평을 들었다. 좀 더 개성 있고 아이디어 넘치는 디자인을 하고 싶었는데. ‘잘 팔리겠다’니… 정해진 방법이나 정답이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만의 방법과 답을 스스로 찾아가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지 느꼈다.
노엘 방학 전 마지막 날. 학교에서는 작은 파티가 있었다. 마지막 수업을 준비하고 갔었는데 파티라니. 내가 한국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얘기를 들은 친구들이 다가와 가지 말라며 붙들었다. 이제야 친해졌는데 돌아가게 되니 너무 아쉬웠다. 에스모드 서울로 교환학생을 오겠다고 약속을 받아내고 진하게 포옹했다. 교수님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는데도 내 아쉬움을 느끼셨는지 ‘너는 다시 파리로 오게 될 거야’라며 안아주셨다. 사진으로 남아있지만 꼭 다시 가서 찾아 뵐 것이다.
크리스마스 장식으로 화려하게 반짝이던 파리가 아직도 생생하다. 터무니없이 비싼 담배도, 밤이면 추워서 잠이 깨던 집도, 길거리에서 파는 치즈가 녹아 내린 파니니도, 크리스마스 시장에만 가면 몇 잔이고 마신 따뜻한 와인도 그립다. 하지만 이번 연수가 더 값진 건 패션을 공부하고 있는 학생으로서 욕심이 생겼다는 거다. 진행하고 싶은 테마도 많아졌고 그리고 싶은 그림도 많아졌고 써 보고 싶은 소재도 많아졌다. 그래서 든든하다.
거리에서 파는 장미 한 송이를 사다가 즉석에서 자신의 테이블 위에 있는 물병에 꽂아 꾸미고, 연인들은 자유롭게 사랑하고, 흥이 나면 자리에서 일어나 춤을 추고. 여유로운 파리지엥들이 그립고 아름다운 파리가 그립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