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재발견 한 도쿄에서의 4주

  • 작성일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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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은 따사로운 가을 햇볕이 비추고 있는 에스모드 도쿄. 모든 게 낯선 1층 로비에서 일본어로 된 패션 신문기사들이 스크랩되어 있는 것을 보면서 ‘내가 정말 에스모드 도쿄에 왔구나’ 라는 사실을 실감했다. 로비 한편에는 일본에 오기 얼마 전에 보았던 한국에서 열린 에스모드 인터내셔널쇼에서 보았던 작품들이 마네킹에 전시되어 있었고, 학생들이 바쁘게 자기 작품들을 마네킹에 입혀보고 있었다. 학생들이 만든 개성 넘치는 작품들을 보면서 앞으로 올 4주 동안 새로운 걸 느끼고 배울 수 있다는 사실에 설레었다.

교양수업은 어렵고 전문용어가 많이 나오기 때문에 이해할 수 있을지 자신이 없어 교양수업을 제외하고, 월요일은 오전 오후, 목요일은 오후만 모델리즘 수업을 하고 화요일과 금요일 오전에 모델리즘 수업, 오후에 스틸리즘 수업, 이렇게 일주일에 총 4번 학교를 나와 수업을 듣게 되었다 수업을 듣게 된 반은 스틸리즘은 하마구치 선생님, 모델리즘은 시바사키 선생님이 담당하고 계셨고, 이 반은 10월 달에 시작한 10명 남짓한 인원으로 구성되어 있는 반이였다.

첫 수업은 스틸리즘 수업이였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일본학생들과 인사를 하고 선생님께서 학생들에게 전달사항을 마친 후 어떤 수업이 진행될지 기대했는데, 개강한지 얼마 안된 반이라 일본학생들과는 진도가 맞지 않기 때문에 따로 수업을 진행하게 되었다. 내게 처음 주어진 건 도쿄에 나가 거리와 패션을 보고 오라는 것과 일본에서 받은 인쇄물로 그 거리에서 느낀 점을 콜라주로 표현하는 것이었다. 우리가 가고 싶은 곳과 선생님이 추천해주신 도쿄의 개성 넘치는 스트리트 패션을 보기 위해 거리로 나갔다. 신주쿠, 시부야, 하라주쿠 등 다양한 거리를 갔는데 롤리타 패션같은 일본특유패션의 전문 매장만 있는 백화점들이 있다는 사실과 여성복 브랜드에서 쇼핑하는 남자들이 보인다는 사실, 남성복 브랜드에서는 남성용 레깅스와 스커트를 팔고 있고, 거리에서 스커트를 입은 젊은 남자들이 꽤 많이 신기했다. 남자들의 옷과 여성옷과의 경계가 점점 허물어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2주에는 돌아다녔던 거리 중 마음에 드는 거리를 하나 정해 그곳에 대해 리서치를 하는 일을 했다. 나는 다이칸야마로 정했는데 조용하고 넓지는 않지만 일본인들에게는 멋쟁이가 많고 세련된 느낌의 이미지가 있는 거리로, 유명한 셀렉트샵과 브랜드샵, 개인 디자이너샵이 많은 곳이다. 특히 한국에는 없는 내가 좋아하는 브랜드가 모여있어 난 신이 났다.

교실에서 리서치를 한 자료를 정리하고 있는 동안 스틸리즘 시간인데도 학생들이 마네킹을 들고 들어와 그 위에 작업을 하고 있어 의아할 수 밖에 없었다. 나중에 물어보니 오래된 셔츠를 가지고 각자 입체로 셔츠를 자르고 연결해서 리메이크해 자신만의 새로운 볼륨과 디테일을 찾아 다른 옷을 만드는 작업을 하는 것이었다. 스틸리즘 시간에 그리고 보는 것 뿐만 아니라 직접 손으로 셔츠 디테일의 특징을 이용해 셔츠가 아닌 다른 아이템을 재창조하는 그들을 보면서 매우 흥미로웠다.

3주-4주는 도시에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우선 일본의 거리를 정해 이미지맵을 만드는 작업을 했는데 자신이 직접 거리에서 찍은 사진을 바탕으로 해서 이미지맵 작업을 하고 그 이미지맵과 거리사진, 잡지에서 오린 것들을 바탕으로 콜라주를 만드는 작업을 하였다. 꼭 사람의 얼굴과 팔로 사람형태를 만들어주지 않아도 되고 옷을 입은 사람 형태처럼 보이기만 하면 되는데 이렇게 만든 콜라주로 볼륨과 디테일을 끄집어내서 디자인 한다는 점이 특이했다. 또한 처음에 스타일화를 먼저 그려서 전체적인 볼륨을 먼저 찾은 후에 디자인을 시작한다는 점도 생소했다. 처음 해보는 작업이 재미있긴 했지만 처음에는 어떻게 볼륨과 디테일을 끄집어낼지 갈팡질팡했다. 선생님께서는 너무 평범하다고 지적을 하셨고, 선생님의 조언으로 콜라주에서 여러 가지 디자인과 볼륨, 디테일을 만들어가면서 좀 더 발전된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모델리즘 수업은 시작한지 얼마 안 되는 반이라 셔츠에 대해서 배웠다. 내가 일본어를 할 수 있다고는 하지만 전문 용어를 다 알 수는 없기 때문에 처음에는 긴장하며 수업을 들었다. 다행히 셔츠는 한국에서 모델리즘 선생님이 가르쳐 주셨던 내용을 바탕으로 쉽게 이해할 수 있었다. 모델리즘 수업 전에는 언제나 5분정도의 스피치 시간을 가졌다. 반 학생들이 순서대로 돌아가면서 주말에 있었던 일이나 좋아하는 드라마 이야기 등 하고 싶은 이야기를 앞에서 모두에게 애기하는 시간이었다. 발표나 프레젠테이션을 할 때 말하는 능력과 자신감을 기르기 위한 거라고 하셨는데 내가 발표할 차례가 되니깐 막상 떨려서 앞뒤가 뒤죽박죽이 되어버렸다. 다행히 반 친구들은 고맙게도 내 말을 열심히 들어줬다.

일본 모델리즘 수업은 한국과 달리 우선 입체로 수업을 진행해서 입체로 이해한 다음에 입체로 한 작업을 평면으로 옮겨 그려보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에스모드 일본에서는 입체를 이용한 모델리즘 수업이 많은 것 같았다. 3학년 졸업발표를 만드는 기간이라 자습실과 복도에 광목으로 옷 입혀놓은 것들이 많았는데 자세히 살펴보니 그것 역시 상당수가 입체를 이용한 작품들이 많았다. 한국처럼 선생님께서 먼저 설명하신 다음에 학생들이 선생님이 설명한 내용을 직접 해보고, 학생들의 작업을 보고 또 다시 선생님이 어드바이스를 해주시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교수님들께서는 학생 한 명 한 명에게 이해가 안가는 부분과 실수하는 부분을 원리와 예를 들어가며 열심히 설명해주셨다.

일본 교환학생에 오기 전에 에스모드 서울 교수님께서는 ‘일본 모델리즘 방식이 한국과 달라 혼동이 올 수 있으니 가급적 입체수업에만 참가하라’고 하셨었는데 실제로 마네킹과 원형 사이즈, 다트의 크기나 여유를 주는 방식, 칼라를 그리는 법 등 한국과 다른 점이 무척이나 많았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여러 방식을 배울 수 있어 좋았고, 일본 선생님께서도 한국에서 내가 배워 온 모델리즘 방식과 혼동을 일으키지 않도록 많이 배려해주셨다.

마지막날에 반 모두의 콜라주와 함께 선생님들과 함께 찍은 단체 사진 롤링페이퍼를 받았다. 어색해했던 나를 웃으면서 상냥하게 대해줬던 반 친구들과 세세한 것까지 신경써 주셨던 선생님들과 마지막이라는 사실이 갑자기 가슴에 와 닿아 눈물이 핑 돌았다.

비록 4주라는 짧은 기간이었지만 일본에 가서 많을 것을 보고 느낄 수 있었다. 일본 특유의 디자인과 패션뿐만 아니라, 자신이 좋아하는 것을 즐기고 추구하는 일본인들의 모습도 인상 깊었지만 무엇보다도 처음 겪어보는 외국 생활과 외국인으로서의 사람들과 어울리며 새로운 가치관과 내 안에 있는 고정관념을 깨달을 수 있었다. 내 자신에 대한 발견과 발전이 함께 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