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를린에서의 7주 (에스모드 베를린 교환학생 연수기)

  • 작성일2012.02.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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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랗게 물든 채 아직 간신히 나무에 매달려 있는 은행나무 골목길 사이로, 베를린의 흐린 하늘은 혹시 학교를 찾지 못하는 건 아닐까 조마조마해하던 나를 잡아 이끌었다. 비밀의 화원에서 두 아이들이 보았던 것처럼 좁고 높다랗던 길의 끝에서 에스모드 베를린은 마치 숨겨진 요새처럼 갑작스레 내게 모습을 드러냈다.

명실상부한 국내 유수의 패션교육기관 에스모드 서울. 아무리 많은 사람들이 패션디자인 공부를 위한 유학을 당연시 여겨도 나는 개인적으로 유학의 필요성을 그다지 절감하지 못했다. 그렇지만 재학 기간 중 좀더 많은 것을 얻기 위한 방법에 대해 고민하다가 내린 결론은 교환학생의 기회를 가져보는 것이었다. 패션 디자인의 메카라면 역시 프랑스 파리 본교를 선택해야 했을 것이나, 좀더 새로운 로컬로서의 특취를 느껴보기 위해 최근 젊은 아티스트들의 집결지로 대두되고 있는 베를린의 분교를 목적지로 골랐다.

7주. 길다면 길고 짧다면 짧은 교환학생 과정을 마친 지금 역설적이게도 나는 사람들이 왜 굳이 힘들게 유학길을 선택하는지 조금은 알 것 같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새로운 공기는 '배움'이 아니라 '물듦'으로써 습득한다는 사실을, 새삼스레 깨닫게 되었다.

국제 분교 네트워크에 걸맞게 에스모드 서울과 에스모드 베를린의 커리큘럼 자체는 크게 다르지 않다. 졸업 후 어느 분야에 종사하게 되든 모자람이 없도록 스틸리즘과 모델리즘에 같은 비중을 두고 전공수업을 진행하며 마케팅, 복식사 등 패션과 관련된 몇 가지의 이론/실기 교양수업을 가진다. 그렇지만 교수법에서는 조금씩 차이가 나는 것 같은데, 이는 에스모드의 특성상 각 분교가 위치한 국가의 실제 산업 현장의 현실에 맞는 특화된 교육을 행하고 있기 때문에 생기는 차이일 것이라고 생각한다.

스틸리즘의 경우, 내가 공부한 기간이 학교의 연례 행사인 생 꺄뜨린느 행사가 큰 비중을 차지했기 때문에 다른 몇 개의 프로젝트는 상대적으로 적은 비중으로 진행되어 일반적인 수업 전개 방식에 대해서는 정확한 파악이 어려웠다. 그러나 1주 짜리의 짧은 프로젝트 몇 개와 학교 내부에 전시된 학생작품들에서 그들의 수업내용을 조금은 엿볼 수 있었다. 관련 자료를 리서치하고, 디자인의 타겟과 컨셉을 보여줄 수 있는 이미지맵을 꾸미고, 거기에서 하나의 컬렉션을 이루는 디자인을 도출해낸다는 기본 골격 자체는 내가 서울에서 배운 것과 크게 다르지 않았으나, 특기할 만한 점은 디자인의 모티브를 추상적인 형태에서 가져오는 비중이 좀더 높다는 것이다.

물론 서울에서도 이미지맵에서 디자인의 디테일과 소재개발의 아이디어를 얻긴 하였으나, 베를린에서는 1학년 초기부터 기존의 옷보다는 색다른 오브제에서 텍스쳐의 느낌을 차용하는 훈련을 하는데, 그 단적인 예가 꼴라주 방식의 디자인이다. 도자기, 컴퓨터 등 완전히 색다른 이미지들을 꼴라주하여 착장화를 만들고 여기서의 볼륨과 질감을 최대한 살려 한 착장을 디자인하는 방식인데, 생 꺄뜨린느에서는 1학년 전체가 이 디자인 전개 방식을 필수로 사용했기 때문에 매우 아방가르드하고 장식적인 디자인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솔직히 의복으로서의 견고함이나 실효성에 대해서는 의문을 제기할 수 있을 법한 소재들도 많았지만, 그만큼 자유롭고 창의적인 사고에 대한 훈련이 이루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모델리즘의 경우엔 표면적으로 차이가 조금 더 커서, 지정모델을 기준으로 평면 또는 입체구성을 한다는 점은 같았으나 공통적으로 가는 부분은 옷의 형식과 몸판 정도였고 옷의 기장, 소매, 칼라 등은 개개인의 독자적인 아이디어로 진행되었으며, 소재개발 필수, 디테일 추가 필수 등의 조건이 따라붙었다. 평면구성을 끝낸 구성 패턴은 봉제 패턴 제도-완가봉-패턴수정-봉제법 적용한 반가봉-최종 패턴수정의 순서로 실물제작에 임하게 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입체구성으로 진행하는 독립파트를 보며 모델리즘 수업에서도 스틸리즘적인 아이디어를 실용적으로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이 매우 효과적이라고 느꼈다.

반면, 아무래도 하나의 디자인을 실제적인 하나의 의복으로 완성시키는 데에 필요한 치밀한 수정과 매끈한 밸런스에 대한 집중은 상대적으로 미약하게 여겨졌기 때문에 그동안 서울에서의 모델리즘 수업방법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7주 가운데 가장 이슈가 되었던 이벤트는 아무래도 생 꺄뜨린느였다. 본래는 학교 내부의 축제에 가까웠던 것이 이제는 패션쇼를 메인으로 설치미술, 무용 등 모든 것을 학생 스스로가 만들어 대외적으로 발표하는 자리가 되었다고 한다. 올해의 주제는 지아코메티와 라리크라는 상반된 스타일의 두 조형가를 크로스오버하는 것으로 행사의 성격만큼 대중성보다는 좀더 참신한 디자인에 중점을 두고 진행되었다.

서울과는 달리 베를린은 한 과목으로 하루 종일, 교양수업이 든 날을 제외하고는 일주일 내내 수업하는 방식이긴 했지만 그럼에도 스틸리즘에 할당된 시간이 단 한 주 뿐이라 조금 당황스러웠다. 이후 이어진 2주간의 모델리즘 수업에는 내 작업에 바빠서 볼 새가 없었던 학우들의 작업이 실물로 옮겨지며 그 다양한 모습에 더욱 더 당황했다. 첫째로 하나의 주제에서 파생된 디자인이 이렇게 폭넓게 전개될 수 있구나 싶었고, 둘째로 옷은 미뤄둔 채 일주일 동안 액세서리 제작에 공을 들이는 등 각자의 작업 스타일이 판이하게 다른 모습을 보았다.

모델은 전체 학년에서 선발되었다. 조형팀의 설치물이 시내 중심의 전시공간에 전시되었고, 15유로(약 이만 원)의 입장료에도 불구하고 입장객이 계단까지 전부 들어찼고, 독특한 복장의 무용팀 안무가 쇼의 오프닝을 장식했다. 환영 인사가 이어지고, 메인 쇼가 시작되었다. 의상도 의상이었지만 쇼 스테이지 동선의 참신한 구성과 벽에 영사되던 클로즈업샷의 카메라 워크가 음악, 조명과 이루던 호흡이 짧은 기간에 준비한 것이라고는 믿을 수 없을 만큼 근사했다.

큰 박수 갈채를 받으며 쇼의 피날레에 감사 인사가 있은 후, 그 뒤를 이어 학교가 진행중인 사회 공헌 프로젝트의 프리젠테이션이 있었다. 아프리카의 어려운 국가를 물질로만 도와줄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희망 또한 안겨주어야 한다는 것을 골자로 십수 명의 10대 아이들이 에스모드 베를린에서 잠시 같이 수학하고 돌아갔다는 내용이었다. 쇼가 끝나고도 쇼장을 떠나지 않은 채 행사장 한 켠의 케이터링 테이블에서 샴페인을 한 잔씩 들고 서로 인사와 이야기를 나누는 사람들을 보며, 이곳 사람들의 생활하는 모습을 조금은 더 알게 된 것 같다고 생각했다.

한 해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3월이면 언제나 새 달력의 넓은 공백에 아득한 기분이 들곤 했는데, 어느덧 에스모드에서의 두 번째 해를 매듭짓는 시기에 보낸 마지막 해와 졸업작품에 대한 설레임 반, 불안감 반으로 가슴이 꿈틀거렸다.

베를린에서의 두 달은 여러모로 내게는 큰 수확이었다. 새로운 배움에 대한 것은 물론이고, 처음으로 외따로 혼자 타지에서 생활하면서 느꼈던 많은 것들과, 그런 내게 다른 어디에서 느꼈던 것보다 커다란 친절과 배려로 다가온 베를리너들에 대한 당혹스러울 정도로 컸던 고마움 때문에 내 삶의 자세 자체도 조금은 바뀌지 않았나 싶다. 그래서 내 인생에서 또 한 계단 딛고 올라가지 않았나 감히 생각해 보며, 그 발판을 마련해 준 나의 학교, 에스모드 서울과  전적으로 믿고 지지해 주신 부모님께 차마 다 표현하지 못할 고마움을 가슴에 안고 하루하루 전진해야겠다 다시 한 번 다짐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