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모드 파리 교환학생 프로그램과 요지 야마모토에서의 연수를 마치고
- 작성일2012.02.28
- 조회수3524
처음엔 그냥 호기심에 사무처에 교환학생 문의를 해본 것 이였는데 결국 그것이 현실화 됐다. 가기 전에 사실 많이 망설였는데 지금은 그 당시 망설였던 사실이 민망할 정도로 내게는 오히려 큰 득이 되었다.
다양한 부문에 대한 마케팅 수업, 선생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
마케팅을 전공할 생각이었기에 3학년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월, 수, 금 아침에 이루어졌는데 월요일은 communication 수업으로 소비자 타겟에 관해 심도 있게 공부했으며 수요일은 그야말로 마케팅 수업으로 주어진 마케팅에 관한 기사에서 문제를 제시하고 Plan 만드는 법을 배웠다. 수업은 구두 발표로 대부분 이뤄져서인지 적당한 긴장감이 따랐다. 특히나 아침수업시작은 일명 flash info로 시작되었는데 종이신문에서 마케팅 관련 기사를 세 가지 발췌해서 한 기사당 몇 문장으로 간추려 한사람씩 모두가 발표하는 것 이었다.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완벽히 될 때까지 반복시키는 Christine 선생님의 교수법에 찬성했다. 항상 날카롭고 정확한 비평이 뒤따랐고 우리 역시 반강제로 발표자들의 잘못된 부분을 잡아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집중하여 듣는 것이 중요했고, 이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선생님께서 개인발표만큼이나 중요시 하시는 것은 그룹작업이었다. 수업시간까지 할애해서 그룹작업을 하였고 원칙적으론 선생님의 말씀대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데 작업의 의의가 있었으나 우리 조는 매번 서로가 같은 부분이 부족해 문제였다. 본격적으로 마케팅 수업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비싼 비행기 티켓이 생각나서인지, 아무튼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피와 살로 다가왔고 문장 하나라도 놓칠세라 수업중간 화장실 가는 것도 최대한 참는 상황도 여러 번 발생했다. 금요일 수업은 8시부터 10시 반까지 이루어졌고 매주 다양한 분야의 내부 혹은 외부 강사들이 하는 수업으로 해외 소싱, 이력서/자기소개서 쓰는 법, 언더웨어, 색깔론, 패션쇼 초대장 만들기 등에 관한 수업이 진행됐다. 무척 흥미로왔다.
힘든만큼 보람있는 수업내용에 만족해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Christine 선생님께서는 커리큘럼 중간에 들어와서 어떻게 수업을 따라가겠느냐며 다른 수업을 들으라고 충고하셨는데 첫 수업이 너무 흥미로워 그냥 계속 나갔고 나의 발표 때마다 선생님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져 즐거웠다. 사실, 마냥 즐겁다 함은 과장이고...어찌 아침 8시 수업이 즐거울 수 있으랴! 깜깜한 아침에 별보며 학교 다니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권장하고 싶지 않다.
내년부터 파리 에스모드에는 3학년에 마케팅과가 없어지고 별도로 마케팅 1년 집중과정이 개설된다고 한다. 없어지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마케팅수업은 주로 마케팅학교 ISEM 건물에서 있었는데 첫날 초긴장한 관계로 수업시작 20분전에 학교에 도착했다가 5분을 기다려도 문을 열지 않아 뭘 잘못 알았나 싶어 에스모드 본교로 달려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이 8시에 시작이면 학교도 8시에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파리에서 만난 에스모드인, 정보람나 동문
서울이 에너지 넘치는 사춘기라면 파리는 죽어가는 노인같다. 죽어는 가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고 왕성한 에너지는 없어도 죽음을 앞둔 노인답게 그 나름의 깊이가 있다. 바로 이 깊이를 찾아 사람들이 꾸역꾸역 파리로 모이나보다. 그들 중 하나가 우연히도 한집에 머물게 된 에스모드 서울의 자존심이자, 한국패션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해 장학생으로 파리에 온 정보람나 선배였다. 자나 깨나 불어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녀는 매사에 의욕이 넘쳐보였고 산책 량도 평균 이상인 걸로 보아 밝은 미래가 예상됐다.
요지 야마모토 인턴사원으로 합격하다!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모드 파리의 일자리 게시판을 들여다보자마자 나의 심장이 심히 고동쳤음을 숨기지 않겠다. 역시나 인턴십이 활성화된 프랑스답게 공짜로 혹은 싼값에 학생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명무명 기업들이 널려있었던 것이다. 컬렉션 기간이니 더더욱 그랬다. 장 폴 고티에, 마르땡 마르지엘라, 존 갈리아노같은 디자이너 그룹부터 샤넬, 디올 같은 럭셔리 그룹은 물론, 에땀 같은 저가의 영캐주얼류까지..... 도데체 어디에 먼저 응시를 해야 할지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결국 나의 취향, 업무 성격, 연수기간을 고려하다보니 후보는 점점 좁혀졌고 요지 야마모토를 일순위에 올리게 되었다. Yohji Yamamoto(이하 YY)에서는 콜렉션 기간이라 풀타임으로 일할 사람을 원한다 하여 어렵게 서울 에스모드의 허락을 얻어 스틸리즘 수업을 면제 받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도 일할 수 있음을 통보받고 나서야 면접 날짜를 받을 수 있었다. YY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다는 우아한 미소의 유럽 판매부 디렉터, 크리스텔은 영어는 잘 하는지, 액셀은 얼만큼 다루는지, 그리고 왜 YY에서 일하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면접합격 이메일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기뻤다.
외국어의 중요성, 절감해
YY에 근무하는 프랑스 직원들에게 언어 3가지는 기본인 듯 했다. 밀라노나 도쿄, 뮌헨, 런던, 뉴욕등지에서 파리 판매를 도우러 오는 YY 판매부 직원들은 대부분 불어를 못하기에 판매기간 동안 그들과 일을 하게 될 연수생은 필히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수년전 어느 날 새벽, 어떤 꿈을 꾸고 깨어나 영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고 그 이후로 영어를 가까이 한 것이 빛을 발했다. 나는 기뻤다. 액셀은 몇 년 전 써본 경험이 있어서 체면유지는 가능했다.
나의 포지션은 assistante commerciale 로서 업무는 패션쇼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패션쇼 전에는 그야말로 쇼와 판매 준비 작업으로서 대부분이 액셀과의 싸움이었다. 바이어들 쇼룸 미팅 날짜 정리, 쇼 좌석과 호텔 리스팅부터 호텔 예약 확인전화, 초청장 보내는 작업 등을 했다. 크리스텔은 액셀을 향한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액셀은 마술과도 같았다. 액셀만 제대로 배우면 삶을 좀더 쉽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지 야마모토 패션쇼 준비과정 경험해
YY는 총 네 개의 브랜드로 나뉘는데 우선 Yohji Yamamoto, Y's, Y, 그리고 Y3가 있다. Y는 남성복에만 해당되는 수트 라인이고 Y3는 아디다스를 위한 YY에 의한 스포티 라인, Y's는 Yohji Yamamoto의 좀 더 상업적이고 캐쥬얼한 저가 버전이다. 마지막으로 Yohji Yamamoto는 우리가 쇼에서 보는 콜렉션 라인이다.
패션쇼 시작 며칠 전이 되면 일본에서 요지 야마모토와 수십 명이 되는 그의 어시스턴트 및 직원들이 모두 시커먼 차림으로 도착하여 파리 사무실의 판매팀, 홍보팀과 함께 도착한 옷들을 나르고 정리한다. 워낙 많은 인원이 동시에 작업하다보니 일은 비교적 단시간에 끝난다. 비닐을 하나하나 벗기면서, 갓 도착한,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품 및 쇼 옷들을 보고 만지작거리는 것도 큰 재미였다. 일본 직원들이야 일년 내내 봐왔으니 별 느낌 없겠지만 최소한 파리 직원들의 눈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대충 정리가 되어 가면 서로서로 옷에 대한 느낌들을 교환했다. 그 다음 날부터는 요지 야마모토님이 출근하여 대략 추려진 모델들에게 음악에 맞춰 워킹도 시켜보고 옷도 입혀보면서 쇼에 나갈 옷과 사람을 결정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 쇼룸 디스플레이, 주문 입력과 정리, 판매...
판매전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쇼룸 디스플레이였다. 최대한 바이어들의 눈을 자극하기 위해 옷의 색상, 소재, 볼륨, 아이템 종류들을 고려하여 수차례 바꿔가며 완성시킨다. YY 건물은 실로 무척 운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바닥에, 건물 내 구조도 직사각형으로 5층까지 탁 트인 천장.......사각꼴로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돌다 보면 금새 피곤해진다. 운치가 있는 실내이니 옷들도 더더욱 제 가치를 뽐낸다.
2월 초, YY남성복 쇼가 끝이 나고 8일간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나는 2층의 Y's 라인을 맡았는데 첫날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였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성능이 나쁜 프린터기로 나라별로 가격이 다른 수 십장씩 되는 주문 책자들을 수 천장, 수 만장은 프린트 한 것 같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들의 주문을 YY 특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시키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였는데 입력시키고 나면 그 주문서 또한 또 프린트해야 했다. 내 인생에 있어 그 날 만큼 그토록 많이 프린터기를 이용한 적이 없는 듯싶다.
또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YY에서 여러 부서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하루하루가 너무도 즐거웠음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잘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엔 틈틈이 클라이언트 파일들을 나라별, 매장별로 정리하였는데 YY의 클라이언트들은 한국의 신세계를 포함한 아시아부터 유럽, 중동,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역시 세계적이었다. 특히나 중동지역에서 YY 판매율이 높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양쪽의 옷 스타일이 좀 비슷하긴 하다. 이태리에는 스타일리시한 남성이 많은 만큼 YY의 가장 큰 시장이었다. 스틸리즘 시간에 용납되지 않을 디자인들이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것을 직접 확인 하는 것도 재밌었다. 크리스텔은 어느 아이템이 베스트 셀러인지 등을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환상적인 요지 야마모토 여성복 쇼에 매료
남성복쇼는 영 이해할 수 없었던 반면 여성복쇼는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환상적이었는지는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란다. 한국복식사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옷도 눈에 띄었다. 언제들 YY와 친분은 쌓았는지 마틴 싯봉과 도나 카란도 YY 여성복쇼에 왔다. 도나카란은 몇 달 전만 해도 저조한 판매율과 심각한 재정난에 힘겨워 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얼굴을 보니 사실이 아니었는지 일이 해결된건지.......백스테이지의 그녀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마틴 싯봉 역시 너무도 예뻤다. 요지 야마모토는 언제 어느 때나 그 표정, 그 모습.......서울역 노숙자룩을 고집했다. 이는 내가 YY에서 연수하는 이유다. 한국잡지사들은 스탠딩자리도 힘들게 얻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확인했다.
연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YY의 브라드리, 회사직원들과 숍 마스터들만을 대상으로 한 세일로서 자그마치 90프로나 할인이 되었다. 나 역시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평생 잊지 못할 6주간의 연수
6주의 귀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에스모드 서울과 에스모드 파리, 그리고 요지 야마모토 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유민정 학생 연수에 대한 평가>
에스모드 파리 마케팅 담당 교수 Christine LE BUGLE :
매우 성실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며 확실히 평균 이상의 '시장에 대한 이해력'을 갖춘 학생입니다. 모든 과제물들을 제 시간에 성실히 작업해 제출했습니다. 모든 작업결과물을 종합해 볼때 20점 만점에 15.50의 평점을 줄 수 있으며, 이는 학급의 최우수 학생에 해당하는 점수입니다. 주당 12시간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머천다이징 수업을 들으면서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었습니다. 유민정 학생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에 되어 매우 안타깝고, 학생의 능력에 걸맞는 프로페셔널한 성과를 거두기를 바랍니다.미래에 유민정 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하게 될 사장은 큰 행운을 잡는 것이리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원문 : Elève très agréable, très motivée avec une « intelligence marché » nettement au-dessus de la moyenne – Tous les travaux demandés ont été faits avec ponctualité et assiduité , avec une moyenne tous exercices confondus de 15,50/20, ce qui la place en tête de classe. Aucune absence n’a été constatée, sur un total de 12 heures de marketing/communication/merchandising par semaine. Ce fut pour moi un vrai regret de la voir partir et je lui souhaite toute la réussite professionnelle qu’elle mérite ; son futur employeur aura beaucoup de chance de la compter parmi les membres de son équipe.
요지 야마모토 유럽파트 세일즈 매니저 Christelle Languillat :
유민정 학생은 저를 도와 commercial assistant로서 다음과 같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 패션쇼 부문 (고객 정보 업데이트, 호텔 컨택...)
- 판매 부문 (고객 약속 업데이트...)
- 쇼룸 내 컬렉션 디스플레이
- 파일 정리
유민정 학생은 연수 기간 동안 본사에 매우 도움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패션업계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문 : Her mission was to assist me as a commercial assistant for the following tasks:
- Organisation of the show (updating client information, contacting hotels...)
- Organisation of the sales campaign (updating of clients appointments...)
- Display of the collections in the show room
- Archives of files
She was very helpful during the training period and she showed a real interest for the fashion world.
다양한 부문에 대한 마케팅 수업, 선생님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으려 애써
마케팅을 전공할 생각이었기에 3학년 마케팅 수업을 들었다. 수업은 월, 수, 금 아침에 이루어졌는데 월요일은 communication 수업으로 소비자 타겟에 관해 심도 있게 공부했으며 수요일은 그야말로 마케팅 수업으로 주어진 마케팅에 관한 기사에서 문제를 제시하고 Plan 만드는 법을 배웠다. 수업은 구두 발표로 대부분 이뤄져서인지 적당한 긴장감이 따랐다. 특히나 아침수업시작은 일명 flash info로 시작되었는데 종이신문에서 마케팅 관련 기사를 세 가지 발췌해서 한 기사당 몇 문장으로 간추려 한사람씩 모두가 발표하는 것 이었다. 조금이라도 완벽하지 않으면 세 번이고 네 번이고 완벽히 될 때까지 반복시키는 Christine 선생님의 교수법에 찬성했다. 항상 날카롭고 정확한 비평이 뒤따랐고 우리 역시 반강제로 발표자들의 잘못된 부분을 잡아내야만 했다. 이를 위해서는 상대방의 말을 집중하여 듣는 것이 중요했고, 이 역시 쉽지만은 않았다.
선생님께서 개인발표만큼이나 중요시 하시는 것은 그룹작업이었다. 수업시간까지 할애해서 그룹작업을 하였고 원칙적으론 선생님의 말씀대로 서로의 부족한 점을 채워주는데 작업의 의의가 있었으나 우리 조는 매번 서로가 같은 부분이 부족해 문제였다. 본격적으로 마케팅 수업을 해보지 않아서인지, 비싼 비행기 티켓이 생각나서인지, 아무튼 선생님의 말 한마디 한마디가 피와 살로 다가왔고 문장 하나라도 놓칠세라 수업중간 화장실 가는 것도 최대한 참는 상황도 여러 번 발생했다. 금요일 수업은 8시부터 10시 반까지 이루어졌고 매주 다양한 분야의 내부 혹은 외부 강사들이 하는 수업으로 해외 소싱, 이력서/자기소개서 쓰는 법, 언더웨어, 색깔론, 패션쇼 초대장 만들기 등에 관한 수업이 진행됐다. 무척 흥미로왔다.
힘든만큼 보람있는 수업내용에 만족해
처음 수업에 들어갔을 때 Christine 선생님께서는 커리큘럼 중간에 들어와서 어떻게 수업을 따라가겠느냐며 다른 수업을 들으라고 충고하셨는데 첫 수업이 너무 흥미로워 그냥 계속 나갔고 나의 발표 때마다 선생님의 긍정적인 평가가 이어져 즐거웠다. 사실, 마냥 즐겁다 함은 과장이고...어찌 아침 8시 수업이 즐거울 수 있으랴! 깜깜한 아침에 별보며 학교 다니는 것은 그 누구에게도 권장하고 싶지 않다.
내년부터 파리 에스모드에는 3학년에 마케팅과가 없어지고 별도로 마케팅 1년 집중과정이 개설된다고 한다. 없어지기 전에 와서 다행이다. 마케팅수업은 주로 마케팅학교 ISEM 건물에서 있었는데 첫날 초긴장한 관계로 수업시작 20분전에 학교에 도착했다가 5분을 기다려도 문을 열지 않아 뭘 잘못 알았나 싶어 에스모드 본교로 달려갔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수업이 8시에 시작이면 학교도 8시에 문을 연다는 것이었다. 바로 내가 프랑스를 좋아하는 이유다.
파리에서 만난 에스모드인, 정보람나 동문
서울이 에너지 넘치는 사춘기라면 파리는 죽어가는 노인같다. 죽어는 가지만 아직 죽지는 않았고 왕성한 에너지는 없어도 죽음을 앞둔 노인답게 그 나름의 깊이가 있다. 바로 이 깊이를 찾아 사람들이 꾸역꾸역 파리로 모이나보다. 그들 중 하나가 우연히도 한집에 머물게 된 에스모드 서울의 자존심이자, 한국패션대전에서 국무총리상을 수상해 장학생으로 파리에 온 정보람나 선배였다. 자나 깨나 불어공부에 여념이 없는 그녀는 매사에 의욕이 넘쳐보였고 산책 량도 평균 이상인 걸로 보아 밝은 미래가 예상됐다.
요지 야마모토 인턴사원으로 합격하다!
파리에 도착하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에스모드 파리의 일자리 게시판을 들여다보자마자 나의 심장이 심히 고동쳤음을 숨기지 않겠다. 역시나 인턴십이 활성화된 프랑스답게 공짜로 혹은 싼값에 학생들을 이용하고자 하는 유명무명 기업들이 널려있었던 것이다. 컬렉션 기간이니 더더욱 그랬다. 장 폴 고티에, 마르땡 마르지엘라, 존 갈리아노같은 디자이너 그룹부터 샤넬, 디올 같은 럭셔리 그룹은 물론, 에땀 같은 저가의 영캐주얼류까지..... 도데체 어디에 먼저 응시를 해야 할지 입이 다물어지질 않았다. 결국 나의 취향, 업무 성격, 연수기간을 고려하다보니 후보는 점점 좁혀졌고 요지 야마모토를 일순위에 올리게 되었다. Yohji Yamamoto(이하 YY)에서는 콜렉션 기간이라 풀타임으로 일할 사람을 원한다 하여 어렵게 서울 에스모드의 허락을 얻어 스틸리즘 수업을 면제 받고 화요일과 목요일은 오전도 일할 수 있음을 통보받고 나서야 면접 날짜를 받을 수 있었다. YY에서 일한지 10년이 넘었다는 우아한 미소의 유럽 판매부 디렉터, 크리스텔은 영어는 잘 하는지, 액셀은 얼만큼 다루는지, 그리고 왜 YY에서 일하고 싶은지 등을 물었다. 면접합격 이메일을 받은 그 순간, 나는 기뻤다.
외국어의 중요성, 절감해
YY에 근무하는 프랑스 직원들에게 언어 3가지는 기본인 듯 했다. 밀라노나 도쿄, 뮌헨, 런던, 뉴욕등지에서 파리 판매를 도우러 오는 YY 판매부 직원들은 대부분 불어를 못하기에 판매기간 동안 그들과 일을 하게 될 연수생은 필히 영어를 할 줄 알아야 한다고 했다. 수년전 어느 날 새벽, 어떤 꿈을 꾸고 깨어나 영어의 필요성을 깨닫게 됐고 그 이후로 영어를 가까이 한 것이 빛을 발했다. 나는 기뻤다. 액셀은 몇 년 전 써본 경험이 있어서 체면유지는 가능했다.
나의 포지션은 assistante commerciale 로서 업무는 패션쇼 전과 후로 나눌 수 있다. 패션쇼 전에는 그야말로 쇼와 판매 준비 작업으로서 대부분이 액셀과의 싸움이었다. 바이어들 쇼룸 미팅 날짜 정리, 쇼 좌석과 호텔 리스팅부터 호텔 예약 확인전화, 초청장 보내는 작업 등을 했다. 크리스텔은 액셀을 향한 나의 시야를 넓혀주었다. 액셀은 마술과도 같았다. 액셀만 제대로 배우면 삶을 좀더 쉽게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생각이 들었다.
요지 야마모토 패션쇼 준비과정 경험해
YY는 총 네 개의 브랜드로 나뉘는데 우선 Yohji Yamamoto, Y's, Y, 그리고 Y3가 있다. Y는 남성복에만 해당되는 수트 라인이고 Y3는 아디다스를 위한 YY에 의한 스포티 라인, Y's는 Yohji Yamamoto의 좀 더 상업적이고 캐쥬얼한 저가 버전이다. 마지막으로 Yohji Yamamoto는 우리가 쇼에서 보는 콜렉션 라인이다.
패션쇼 시작 며칠 전이 되면 일본에서 요지 야마모토와 수십 명이 되는 그의 어시스턴트 및 직원들이 모두 시커먼 차림으로 도착하여 파리 사무실의 판매팀, 홍보팀과 함께 도착한 옷들을 나르고 정리한다. 워낙 많은 인원이 동시에 작업하다보니 일은 비교적 단시간에 끝난다. 비닐을 하나하나 벗기면서, 갓 도착한, 그 누구에게도 공개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상품 및 쇼 옷들을 보고 만지작거리는 것도 큰 재미였다. 일본 직원들이야 일년 내내 봐왔으니 별 느낌 없겠지만 최소한 파리 직원들의 눈들은 반짝반짝 빛이 났고 대충 정리가 되어 가면 서로서로 옷에 대한 느낌들을 교환했다. 그 다음 날부터는 요지 야마모토님이 출근하여 대략 추려진 모델들에게 음악에 맞춰 워킹도 시켜보고 옷도 입혀보면서 쇼에 나갈 옷과 사람을 결정했다.
나에게 주어진 일, 쇼룸 디스플레이, 주문 입력과 정리, 판매...
판매전 해야 할 또 다른 중요한 작업 중 하나가 바로 쇼룸 디스플레이였다. 최대한 바이어들의 눈을 자극하기 위해 옷의 색상, 소재, 볼륨, 아이템 종류들을 고려하여 수차례 바꿔가며 완성시킨다. YY 건물은 실로 무척 운치가 있다. 내가 좋아하는 나무 바닥에, 건물 내 구조도 직사각형으로 5층까지 탁 트인 천장.......사각꼴로 왼쪽 오른쪽, 위 아래로 돌다 보면 금새 피곤해진다. 운치가 있는 실내이니 옷들도 더더욱 제 가치를 뽐낸다.
2월 초, YY남성복 쇼가 끝이 나고 8일간의 판매가 시작되었고 나는 2층의 Y's 라인을 맡았는데 첫날은 그야말로 정신없는 하루였다. 몇 개 되지도 않는 성능이 나쁜 프린터기로 나라별로 가격이 다른 수 십장씩 되는 주문 책자들을 수 천장, 수 만장은 프린트 한 것 같다. 세계 각지에서 온 바이어들의 주문을 YY 특별 컴퓨터 프로그램에 입력시키는 것이 나의 주요 임무였는데 입력시키고 나면 그 주문서 또한 또 프린트해야 했다. 내 인생에 있어 그 날 만큼 그토록 많이 프린터기를 이용한 적이 없는 듯싶다.
또 다시 느끼는 것이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든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람이라는 것이다. YY에서 여러 부서의 다양한 국적의 사람들과 일하면서 몸은 힘들었을지언정 하루하루가 너무도 즐거웠음은 사실이다. 사람들이 모이면 문제는 생기기 마련이지만 그들은 잘 극복해나가고 있었다.
남은 시간엔 틈틈이 클라이언트 파일들을 나라별, 매장별로 정리하였는데 YY의 클라이언트들은 한국의 신세계를 포함한 아시아부터 유럽, 중동, 아메리카, 오세아니아 지역까지 역시 세계적이었다. 특히나 중동지역에서 YY 판매율이 높다는 사실이 신선했다. 가만 생각해보면 양쪽의 옷 스타일이 좀 비슷하긴 하다. 이태리에는 스타일리시한 남성이 많은 만큼 YY의 가장 큰 시장이었다. 스틸리즘 시간에 용납되지 않을 디자인들이 전 세계로 팔려나가는 것을 직접 확인 하는 것도 재밌었다. 크리스텔은 어느 아이템이 베스트 셀러인지 등을 찬찬히 설명해 주었다.
환상적인 요지 야마모토 여성복 쇼에 매료
남성복쇼는 영 이해할 수 없었던 반면 여성복쇼는 너무도 환상적이었다. 어떻게 환상적이었는지는 인터넷을 통해 확인하시길 바란다. 한국복식사에서 영감을 받은 듯한 옷도 눈에 띄었다. 언제들 YY와 친분은 쌓았는지 마틴 싯봉과 도나 카란도 YY 여성복쇼에 왔다. 도나카란은 몇 달 전만 해도 저조한 판매율과 심각한 재정난에 힘겨워 한다는 소문을 들었었는데 얼굴을 보니 사실이 아니었는지 일이 해결된건지.......백스테이지의 그녀얼굴에선 광채가 났다. 마틴 싯봉 역시 너무도 예뻤다. 요지 야마모토는 언제 어느 때나 그 표정, 그 모습.......서울역 노숙자룩을 고집했다. 이는 내가 YY에서 연수하는 이유다. 한국잡지사들은 스탠딩자리도 힘들게 얻을 수밖에 없는 안타까운 현실도 확인했다.
연수의 하이라이트는 뭐니뭐니해도 YY의 브라드리, 회사직원들과 숍 마스터들만을 대상으로 한 세일로서 자그마치 90프로나 할인이 되었다. 나 역시 그냥 넋 놓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평생 잊지 못할 6주간의 연수
6주의 귀한 경험을 하게 해 주신 에스모드 서울과 에스모드 파리, 그리고 요지 야마모토 사에 진심으로 감사한다.
<유민정 학생 연수에 대한 평가>
에스모드 파리 마케팅 담당 교수 Christine LE BUGLE :
매우 성실하고, 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며 확실히 평균 이상의 '시장에 대한 이해력'을 갖춘 학생입니다. 모든 과제물들을 제 시간에 성실히 작업해 제출했습니다. 모든 작업결과물을 종합해 볼때 20점 만점에 15.50의 평점을 줄 수 있으며, 이는 학급의 최우수 학생에 해당하는 점수입니다. 주당 12시간의 마케팅/커뮤니케이션/머천다이징 수업을 들으면서 단 한 번의 결석도 없었습니다. 유민정 학생이 한국으로 다시 돌아가에 되어 매우 안타깝고, 학생의 능력에 걸맞는 프로페셔널한 성과를 거두기를 바랍니다.미래에 유민정 학생을 직원으로 채용하게 될 사장은 큰 행운을 잡는 것이리라 감히 말씀드립니다.
원문 : Elève très agréable, très motivée avec une « intelligence marché » nettement au-dessus de la moyenne – Tous les travaux demandés ont été faits avec ponctualité et assiduité , avec une moyenne tous exercices confondus de 15,50/20, ce qui la place en tête de classe. Aucune absence n’a été constatée, sur un total de 12 heures de marketing/communication/merchandising par semaine. Ce fut pour moi un vrai regret de la voir partir et je lui souhaite toute la réussite professionnelle qu’elle mérite ; son futur employeur aura beaucoup de chance de la compter parmi les membres de son équipe.
요지 야마모토 유럽파트 세일즈 매니저 Christelle Languillat :
유민정 학생은 저를 도와 commercial assistant로서 다음과 같은 일을 수행했습니다.
- 패션쇼 부문 (고객 정보 업데이트, 호텔 컨택...)
- 판매 부문 (고객 약속 업데이트...)
- 쇼룸 내 컬렉션 디스플레이
- 파일 정리
유민정 학생은 연수 기간 동안 본사에 매우 도움이 되었을뿐만 아니라 패션업계에 대한 진심어린 관심을 보여주었습니다.
원문 : Her mission was to assist me as a commercial assistant for the following tasks:
- Organisation of the show (updating client information, contacting hotels...)
- Organisation of the sales campaign (updating of clients appointments...)
- Display of the collections in the show room
- Archives of files
She was very helpful during the training period and she showed a real interest for the fashion world.
